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숭례문 방화 사건 (문단 편집) === [[복원]] 문제점들 === * 말이 많은 대목장인 신응수부터 시작해서 문제점들이 꽤 있어서 복원에 대해 우려가 있었다. 전통 방식으로 복원하겠다고 했지만 [[일제강점기]]의 시멘트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굴착기나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52&aid=0000334229|논란이 되기도 했다]]. 재미교포 건축가가 실측 자료를 주겠다고 했는데도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26&newsid=20111103031836362&p=chosun&RIGHT_CUL=R5|붕괴 3년 후에야 실측 도면을 찾은 사례도 있었다]]. 다만 실제 복원 공사는 2010년부터 진행했기 때문에 공사 시작일로부터 계산하면 1년이다. * 또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0522100620149&cateid=1020&RIGHT_COMM=R8|복구 공사가 전통 기법에 기반을 두지 않은 설계에 따라 진행되어 원형 훼손의 우려가 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일단 복원 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최대한 전통 방식을 따르긴 했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어서 전통 안료의 경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98&contents_id=26192|도저히 복원에 쓰일 양과 질이 충분히 되지 못해서 상당 부분 일본산 안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전통 방식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원래 대한민국에서 나는 원료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일본산을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80년대 이후 숭례문에 단가가 싸고 규격에 잘 맞는다는 이유로 수제 기와가 아니라 기계 기와를 사용했고 이 때문에 화재 당시에는 몇몇 부분을 제외하곤 전부 기계 기와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이때 복원 당시엔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인 제와장 한형준 선생과 그 제자들을 불러 수제 기와를 제작했고 중요무형문화재 121호인 이근복 번와장[* 제와장이 기와를 굽는 장인이라면 번와장은 그 기와를 가지고 실제 시공을 하는 장인을 뜻한다.]이 그 기와를 가지고 교체했다. 화재 이전 숭례문과 복원 후 숭례문 기와의 색이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 기계 기와는 검은색에 가깝고 수제 기와는 회색빛에 가까운 색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고궁을 비롯해 대부분의 문화재에 전부 기계 기와를 사용했고 [[경복궁 광화문|광화문]] 복원 당시에도 기와도 기계 기와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수제 기와를 사용하고 있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eoul-Namdaemun.jpg|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k-heritage.tv/20138169370_638307109_0.jpg|width=100%]]}}} || ||<-1> {{{#fff ''' 복원(방화) 전 ''' }}} ||<-1> {{{#fff ''' 복원 후 ''' }}} || * 숭례문의 벽화 복원이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숭례문에 그려진 벽화가 화재가 나기 전에 있었던 모습과 너무 달라서 네티즌들은 원래의 용 그림을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용처럼 만들었다며 비난했다. 역사학자 [[전우용]]도 자신의 트위터에 [[http://m.mt.co.kr/renew/view.html?no=2012123017572178789|단가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하여 논란을 부추겼다.[* "숭례문에 '복원'된 용 그림이 화제군요."라며 "용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건, 십중팔구 '단가'일 겁니다. 디즈니 캐릭터 같은 이 용이 '가격' 중심 문화의 상징인 셈이죠."라고 주장했다가 이후 "복원 기준으로 삼은 건 1963년의 용 그림이라는 데, 참고하세요. '단가' 관련 트윗들은 지우고 당사자에게 사과드립니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러나 단청장의 아들 측은 화재가 나기 전에 있었던 그림은 1963년 복원 공사 때 그려진 것이고 [[http://www.pgr21.com/pb/pb.php?id=freedom&no=41379|현재 그려진 그림이 오히려 원판에 가깝다고 밝혔으며]] 문화재청에서도 1963년 복원 공사 당시의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1963년 복원 당시에 오류가 있었고 문화재청이 별다른 검증 없이 1963년 단청을 따르기로 했다면 오류 역시 그대로 답습한 것이란 점에서 문제가 있다. 위의 글대로면 1963년의 단청은 조선 초기를 기준으로 잡았으나 숭례문은 여러 차례 중개축을 거치며 조선 초기의 모습은 전혀 남지 않았고 단청 또한 중개축 과정에서 그 시대의 양식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전우용도 관련 트윗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사실 조선 시대의 용 그림을 보면 의외로 지금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처럼 희화화된 용이 많다. 용을 희화화하는 것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유행했던 것으로, [[한나라]] 시기부터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왔다. * 2013년 2월 가림막 철거 후에는 좌우 성벽 복원 부분이 논란이 되었다. 물론 원래 성문이었고 서울특별시가 한양 성곽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성벽 복원 자체는 합당한 일이긴 한데 아무리 주변 도로 문제라고 하지만 성벽의 좌우 '''비대칭'''이 그러려니 하기에는 너무 심한 비대칭인 것이었다. 화재 이전 성벽 없이 숭례문 단독으로 서 있었을 때의 장엄한 '''대칭미'''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소수이지만 오히려 이런 비대칭미가 낫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수원화성]]은 도로 위로 성벽을 육교 형식으로 만들어 복원한 사례가 있고 [[한양도성]]의 성곽들 역시 전체적으로 복원 중이라 숭례문 서쪽 성곽도 곧 복원될 가능성이 높다. 그 외에 상세한 복원 공사 내용은 [[KBS]] 다큐멘터리 '숭례문 1911일의 기록'을 참고. * 2013년 10월 숭례문 단청 20여 곳이 벗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문화재청에서는 색을 밝게 하기 위한 일종의 배경색인 호분(흰색)을 너무 짙게 발랐고 또 그 위에 주색을 칠했더니 무거워져 전통 안료인 아교로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박락[* 剝落, 나무 등에 새긴 그림이나 글씨가 오래 묵어 긁히고 깎여서 떨어짐] 현상이 일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아무래도 아교가 합성 안료보다 약해 일어난 현상으로 보인다. 합성 안료의 경우 녹색 위에 바로 주색을 칠해도 색이 잘 나오지만 전통 안료는 잘 나오지 않는다. 아마 이런 자잘한 사고는 앞으로도 자주 일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전통 기법으로 복원하는 것이 옳긴 하지만 이미 전승이 끊긴 방법으로 무리하게 복원한 측면도 있다. 일례로 문화재청에서는 녹색 안료의 원석인 [[공작석]]을 힘들게 구해 왔다고 홍보했지만 공작석을 받아든 단청장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며 오히려 신기해했다고. * 이 항목 본문에 언급되어 있는 문화재 전문가 황 모 씨는 라디오에서 전통 기법이었으면 안료가 나무에 스며들어 떨어지지 않는데 일본식 안료를 써서 그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위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채색 기법은 기본적으로 광물성 안료를 붙이는 것이다. 다만 그 안료나 붙이는 데 사용하는 재료가 무엇인지(예를 들어, 아교나 계란 노른자)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항목에 언급된 것처럼 전승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기술들을 전통에 집착해서 무리하게 적용하다가 생긴 불상사인 것이다. 숭례문 부실 복원 논란이 한창 거셀 때의 일로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논란을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 기타 부실 복구 사항에 대해서는 [[#s-6.3|재시공 통보 문단]]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